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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신범 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생활 속 화학제품 안전관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정책과 제도의 측면에서 -

이 글은 서울대학교 보건학논집의 요청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중요 내용만 간략히 소개합니다.


들어가며


화학물질 사용량 증가 및 용도의 확대로 인해 전세계 각국에서 화학사고나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와 건강피해는 형태와 수준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때로 사회적 재난 또는 참사의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참사의 예로는 일본의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 유럽의 탈리도마이드 피해, 인도의 보팔 사고,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참사를 경험한 국가들은 국민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책과 제도를 신설하거나 대폭 개선하여 더 안전한 사회로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유럽에서 탈리도마이드 피해를 경험한 후 독일에서 연방위해평가원(BfR)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라는 참사를 경험한 이후 어떠한 변화를 만들고 있을까? 그리고 그 변화는 참사를 경험한 나라에 찾아올 합당한 수준의 변화가 맞는가? 이 글은 두 가지 질문에 입각하여 국가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참사 이후 등장한 리스크거버넌스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이 글은 개별기업이나 시민의 인식과 태도에 참사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지는 않을 것이며, 피해보상과 관련한 정책 변화 또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


주요 결과

1. 참사 이전의 상황


2011년 이전까지 생활 속 화학제품은 공산품, 의약외품, 위생용품, 화장품 그리고 농약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의약품은 화학제품으로 구분하지 않고 있었다. 2010년 당시 각 제품별 소관부처와 법률 및 법률에 따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지식경제부가 관리하던 생활화학가정용품이 가장 포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여러 개의 법률로 생활 속 화학제품관리가 나뉘어져 있는 것은 행정의 발전단계에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국민과 환경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행위는 보호 대상별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관리하는 제품군의 위험을 인지한 각 부처가 제품관리의 기준을 각 법률에 신설한 것은 적극적 행정행위에 속한다. 다만 이렇게 각법이 발전하는 단계에서는 사각지대가 필수적으로 발생하며, 사각지대를 발견하거나 예측한 각 부처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정책을 조율하거나 개선하느냐에 따라 사각지대가 감소하게 된다.


가습기살균제는 공산품으로서 생활화학가정용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소관부서인 지식경제부는 생활화학가정용품의 거대한 사각지대를 방치하였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기술표준원(현 국가기술표준원)은 2007년 「자율안전확인대상공산품의 안전기준」 고시(기술표준원고시 제2007-34호)를 제정하였다. 이때 부속서7에 생활화학가정용품 안전기준이 마련되었다. 부속서 7에 따르면 ‘생활화학가정용품이란 일반 소비자들이 주로 사용할 의도의 화학제품 중에서 유해물질을 함유하고 있거나 함유할 우려가 있는 화학제품’이지만,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 광택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및 섬유유연제’로 제품군을 국한하였다. 이러한 품목 제한행위는 관리대상 품목 외의 비관리품목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기준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품목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어야 하나, 고시 제정 후 6년이 지난 2013년까지도 관리품목이 세정제, 방향제, 코팅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및 섬유유연제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6]. 따라서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서는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 제11조에 따라 안전확인대상공산품의 지정 및 변경은 공산품안전심의위원회의 업무이기 때문에, 위원회 안건을 마련하는 지식경제부가 관리품목의 확대를 추진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별위원회 조사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수입사들이 기술표준원에 어떤 안전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질문하였으나, 관리품목이 아니라는 답변만 하였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하였다[7].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가 다부처로 나뉘어져 신규제품 등장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부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참사 이후 생활화학가정용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서 삭제되고, 환경부 소관 법률로 관리가 이관되는 조치를 낳게 된다.


참사 이전 살생물제품이 이슈로 등장하고 있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살생물제품이 국민의 생활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던 상황에서 방역용 살생물제품 관리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만약 당시에 사전예방적 관점에서 생활 속 살생물제품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관리 영역으로 가져오는 정책을 마련하였다면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해외 화학안전규제 동향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이미 1999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바이오사이드의 국내관리방안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바이오사이드의 개념이나 범위 설정이 미흡하고 일부만 관리되어 사각지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2005년 환경부의 한 연구용역보고서에서는 가정용 제품에서 28종의 살생물제를 확인하여 소비자에게 가해질 위해를 우려하기도 하였다. 연구를 통해 문제상황을 인지하였으나 정책과 규제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것은 문제상황을 인지한 환경부에게 제품관리의 권한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며, 환경부의 연구에서 확인된 위기신호를 지식경제부가 무시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참사 이후의 변화


참사 이후 정책과 제도의 구조에서 발생한 가장 큰 변화는 관리주체의 변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농약관리의 실패에 대한 대책으로 농약관리의 주체를 미국 환경부(US EPA)로 변경한 것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참사 이후 환경부는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의 상당한 부분을 담당하는 조직이 되었다.



참사에 대한 대책으로 2015년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이 시행되면서, 지식경제부가 관리하던 생활화학가정용품이 환경부의 위해우려제품으로 이관된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제33조는 환경부장관에게 위해우려제품에 대해 제품의 품목별로 위해성평가를 실시하도록 했고, 제34조는 위해성평가 이후 품목별로 안전기준과 표시기준을 정하여 고시하도록 했다. 한편, 위해우려제품의 지정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는 2015년 4월 1일 제정된 「위해우려제품 지정 및 안전·표시기준」 고시에 제시되었다. 이 고시에서는 소비자들이 주로 생활용으로 사용하는 제품을 ‘일반 생활화학제품’으로 정의하고, 환경부장관으로 하여금 위해우려제품의 후보군을 선정하기 위해 일반 생활화학제품의 유통조사를 실시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관리품목이 증가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2015년 법률 제정시에는 지식경제부의 생활화학가정용품 품목 등 8개 품목만 지정되었으나, 2017년 고시 개정까지 염료·염색류, 살생물제류와 기타제품류를 확대하여 23개 품목으로 확대하였다.



2018년 「화학제품안전법」 제정으로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 관리가 더욱 강화되었다. 위해우려제품은 이때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화학제품안전법」은 생활화학제품 관리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우려제품에 대해 위해성평가를 하여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으로 지정하면서 안전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일반 생활화학제품이 위해우려제품으로 지정되는 과정이 구체적이지 않았으나, 새 법에서는 절차가 명확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절차 개선의 효과로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은 법제정 이후 꾸준히 증가하게 된다. 2022년 11월 현재 14개 제품군에 42개 품목까지 늘어났다.



살생물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시작되었다. 「화학제품안전법」 시행에 따라 살생물제품의 경우 시장 진입 전 승인을 원칙으로 하여 사각지대 해소는 물론 안전관리 수준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재는 살생물제품 승인의 유예기간이 적용되고 있어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중 살생물제품에 해당하는 살균제품과 구제제품에 대해서만 신고가 아닌 승인으로 관리하고 있다. 규제에 기반한 정책집행도 강화되었다. 「화학제품안전법」 시행 직후 환경부는 시장에 진입하는 새로운 유형의 살생물제품 및 살생물기능을 주장하는 유사제품에 대한 시장조사를 강화하여 불법적 요소가 있는 제품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2020년에는 하위법령을 개정하여 불법제품에 대한 시민 신고 포상금 기준들을 구체화하였다.


제품관리 업무가 국가적 수준에서 조정됨에 따라 기존에 기술표준원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환경부에서 확대 수행하게 되었으므로 새로운 조직이 필요해졌다. 환경부는 환경산업기술원 내에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를 설치하여,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관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환경산업기술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 직원은 총 38명이며 다수인원이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신고와 시장조사 및 제품 사후관리에 투입되고 있다.


결론 및 제안


이 글은 우리나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라는 참사를 경험한 이후 어떠한 변화를 만들고 있을까? 그리고 그 변화는 참사를 경험한 나라에 찾아올 합당한 수준의 변화가 맞는가? 두 질문을 던졌고, 2011년 이후의 변화를 추적해보았다.

참사 이전 생활화학제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 「약사법」, 「공중위생법」, 「화장품법」등으로 나뉘어져 관리되었으며, 각 법령에 따라 관리대상으로 지정된 품목만 관리기준 등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관리대상으로 지정되지 않은 품목이나 구분이 모호한 품목의 안전관리가 어려웠으며, 신제품이 출시되는 경우 담당부처 및 소관 법령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참사 이후 지식경제부로부터 환경부로 생활화학제품 관리가 이관되면서 생활화학제품은 타법이 관리하지 않는 모든 생활 속 화학제품에 대해 관리를 시작함으로써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관리품목을 특정하지 않고 관리제외 제품만 특정하는 일본 등[16] 해외의 방식과도 일맥 상통한다. 또한 신제품의 경우 환경산업기술원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에서 시장조사와 불법제품 감시를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신제품 중 위해우려가 높은 살생물제품에 대해 사전승인제도 및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승인 등의 절차를 통해 적극 대응하고 있었다. 따라서 참사의 중요 원인인 제품관리의 사각지대 해소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책이 수립되는 중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다만, 사각지대가 근원적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의 조직과 인력이 국민을 보호하기에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품목을 늘리면 자동적으로 생활화학제품 안전확인 신고업무와 제품 조사 및 사후관리 업무가 증가할 수밖에 없어 업무에 충분한 조직과 인력 및 예산을 갖추지 못할 경우 사각지대 해소 의욕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경부의 화학물질관리 업무를 화학물질관리원으로 통합하는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2021년에 국회에 제출된 것은 이러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참사 이후 환경부가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관리에서 맡게 된 역할이 커지면서 업무부담이 커졌기 때문에, 만약 화학제품 피해의 조기발견을 위한 감시체계까지 환경부가 운영하게 될 경우 조직 재편과 확대에 대한 모색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 조직의 확대나 재편은 정치적 이슈로서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 수 있다. 만약 앞으로 정부 내 자원이 효과적으로 투자되지 않는다면, 참사 이후 추진되어온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은 분명하다.

한편, 사각지대를 조직과 인력의 투자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가 규제하지 않더라도 제품을 안전하게 제조해야 한다는 원인자 책임 원칙이 현실에서 작동해야 한다. 「제조물책임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제품의 제조자나 수입자가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위험한 신규제품의 등장이 근원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정착되는 수준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사고와 같은 생활 속 화학제품에 의한 사고 위험의 감소 수준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생활화학제품의 원료를 모두 파악하게 됨에 따라 원료 성분 중 유해성정보가 없는 물질의 사용을 줄이고 양질의 정보를 가진 물질들로 대체해 나가는 것도 제품의 근원적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서 등록과 함께 유해성분류 신고제도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어, 생활화학제품 원료의 유해성을 확인하고 사용하는 노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변수 중의 하나로 떠오르는 것은 2017년 등장한 제품안전협약이다. 2016년 정부합동대책이 발표된 후 환경부와 생활화학제품 제조사 간의 자발적인 노력을 위헌 협약이 시작되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가 이 협약에 결합하여 리스크거버넌스로서 형식을 갖추면서 2023년 현재까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제품안전협약에서는 제품전성분공개와 원료안전성평가 방법을 시민사회단체와 기업이 합의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유해성이 낮은 원료로 구성된 제품을 우수제품으로 선정하여 공표하고 있어 정부의 규제나 정책을 보완하는 중요한 기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 제품안전협약이 확대되고 상설화 될 가능성이 있어 더욱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이 글에서 리스크거버넌스까지 다루기는 어려워 후속적 고찰을 시도할 예정이다.

이상의 고찰을 종합할 때, 가습기살균제 사고는 제품관리에서 긍정적인 방향의 변화들을 발생시켰고 아직도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새로운 규제 흐름의 영향을 받아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 정책과 규제 및 거버넌스적 노력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노력에 부합하는 조직과 인력 구조를 정부가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참사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도전을 멈추는 상황을 맞이할 우려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망각의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변화를 완성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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